본문 바로가기

오십. 아줌마의 재테크 좌충우돌

지방 사는 50대 아줌마도 했다! 나의 생생한 서울 아파트 매입기

"지방에 사는 평범한 50대인 내가 과연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까?" 3년 전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단연코 '아니오'였습니다. 충주에서 직장을 다니며 두 딸을 키우고 아픈 부모님을 돌보느라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던 제게, 서울 아파트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매달 월급의 40%를 악착같이 모으며 품었던 간절함은,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접한 '월급쟁이부자들(월부)' 강의를 만나면서 인생의 거대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의심으로 시작했던 그 작은 발걸음이 어떻게 제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는지, 그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1. 비가 새던 11평 집,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내 집 마련의 꿈

사실 제게 '집'은 늘 애틋하고도 간절한 단어였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비가 새고 바퀴벌레가 나오던 열악한 곳에서 살았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이 되어서야 겨우 11평짜리 임대아파트로 이사 가던 날, 엄마와 저는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우리도 드디어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에 사는구나!" 그 소박했던 기쁨의 순간, 제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른이 되면 꼭 내 힘으로 온전한 내 집을 사겠다'는 단단한 꿈이 싹텄습니다. 비록 지방 작은 도시에 살면서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입니다.

 

2. 평일에는 충주 직장인, 주말에는 3만 보를 걷는 서울 임장꾼

'종잣돈 1억 남짓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공부는 이내 제 삶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평일에는 온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저질 체력을 이끌고 퇴근해 새벽까지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과제를 해나갔습니다.

가장 큰 고비는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서울 임장이었습니다. 토요일 새벽,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눈을 비벼가며 충주발 서울행 첫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동대문구 골목골목을 팀원들과 함께 걸으며 교통, 학군, 개발 계획을 수첩에 빽빽하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특히 유난히 땡볕이 내리쬐던 그해 여름은 정말 지독했습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등줄기에는 비 오듯 땀이 흐르고, 다리가 부어올라 감각이 없어질 때쯤이면 '내가 이 나이에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울컥 들기도 했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절뚝거리면서도, 서로 물을 나눠 마시며 "조금만 더 힘내자"고 응원해 주던 팀원들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하루 3만 보가 넘는 그 치열했던 걸음들이 결국 후회 없는 선택을 만드는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3. 계약서 쓰던 날의 떨림과 잠 못 이루던 전세 맞추기

6개월간 샅샅이 뒤진 끝에 드디어 제 종잣돈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아냈습니다.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도 "내가 정말 서울 아파트를 계약하러 온 게 맞나?" 싶어 심장이 터질 듯 뛰었습니다. 매도인과의 가격 협상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몇 번이나 부동산 소장님께 전화를 걸고 조율했는지 모릅니다. 머릿속이 하얘질 때마다 강의에서 배운 협상 가이드를 되새기며 용기를 냈고, 마침내 원하는 가격에 계약을 이끌어냈습니다. 가계약금 500만 원을 송금하던 그 손가락의 떨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진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하필 당시는 전세사기 뉴스가 연일 언론을 도배하던 냉랭한 시기였습니다. 가계약까지 했던 세입자가 불안하다며 갑작스럽게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제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잔금은 어떻게 치르나' 하는 공포에 몇 날 며칠을 꼬박 밤을 새우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피 마르는 노력 끝에 좋은 세입자분을 구할 수 있었고, 2024년 11월 서울 동대문구의 17평 아파트를 전세 2억 7천만 원에 맞추며 총 매매가 4억 3,500만 원에 최종 계약을 완료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실제로 들인 순수 투자금은 약 1억 7천만 원이었습니다.

4. 50대에 이룬 기적, 시세 6억 원이 준 노후의 선물

계약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날 밤, 우리 부부는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정말 해냈다"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픈 부모님을 간병하고, 두 딸의 교육비를 대느라 늘 빠듯한 월급쟁이 삶이었지만, 매달 월급의 40%를 지독하게 저축하며 준비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시 용기를 내어 행동한 덕분에 운도 따라주었습니다. 저희가 매수한 이후 시장이 움직이면서, 현재 그 아파트의 시세는 6억 원 이상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잡으면 든든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도 있고, 은퇴 후에는 우리 부부의 소중한 노후 자산이 되어줄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든든합니다. 50대가 되어서도 꿈을 가질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5. 꿈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저는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경제학을 전공한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충주에 사는 평범한 50대 직장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꿈은 막연히 바라만 본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행동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부자들에게는 뭐 이정도로 거창하게 이야기하나 할 수 있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저에게는 큰 경험과 감사입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해서 글도 투박하고 많이 미흡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모양을 갖추어 나가려 합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는 제가 직접 부딪치며 겪은 부동산 이야기와 시행착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솔직한 과정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지금 화면 너머로 "나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신다면, 예전의 저처럼 아주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꿈은 나이보다, 당신의 용기와 행동에 훨씬 더 가까이 있습니다.

https://naver.me/FnsaAPJ7